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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심리/재활치료에도 활용되는 요리/음식
이름 행복한 마… (theform@naver.com) 작성일 13-03-05 11:44 조회 1,009

 

요리조리 머리쓰는 요리, 뇌 발달 돕고 치매도 돕는다.

작년 말에 출간된 책 『위로의 밥상(곽재구 외 저)』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내 나라 향기는 모르겠는데, 고향 음식은 진짜 그립더라”.

큰 일을 앞둔 자식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게 든든한 한끼 밥상이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간에 세월의 벽을 무너뜨리는 것도 음식이다. 아프고 기운이 없을 때는 어렸을 적 어머니의 따뜻한 밥상이 생각난다. 음식은 오감을 만족시키는 유일한 도구다. 이런 음식의 속성 때문인지 최근 음식으로 몸과 마음을 치유하자는 요리치료가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요리심리협회 권명숙 대표는 “일선에서 그림·음악·운동 등으로 많은 심리·재활치료를 해 봤지만 요리만큼 좋은 치료 도구가 없다. 보고, 듣고, 느끼고, 만지고, 향기를 맡고, 먹기까지 하는 도구는 음식·요리밖에 없다”고 말했다.

근육·오감 골고루 활용하는 최고의 놀이

요리는 뇌를 자극시키는 ‘도구’다. 신석호소아청소년정신과 신석호 원장은 “아이의 왼쪽 뇌와 오른쪽 뇌가 골고루 자극 받아야 하는데, 요리과정에는 이들 뇌를 자극시키는 요소가 다양한 편이다. 특히 요리 재료를 준비하고, 레서피대로 실행하고, 피드백을 받아 모양을 다시 잡고, 간을 맞추고 하는 과정에서 전두엽 기능이 향상돼 사회성을 기르고 뇌 발달에도 좋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소근육과 대근육을 자극한다. 신 원장은 “우뇌는 수학적 능력과 사고력·추론력·공감각적 능력을 담당하는데, 손가락을 많이 쓰면 우뇌가 자극된다”며 “반죽을 주무르고, 집어 옮기고, 섞는 과정에서 자연히 손가락과 팔을 많이 쓰게 돼 우뇌 자극에 도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음식재료를 나르는 과정에서는 대근육(다리 등 큰 근육)도 발달된다.

두 번째는 시각자극이다. 알록달록한 음식 재료를 보면 시각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 자극된다. 미술치료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다양한 재료를 물성(物性)에 따라 배치하고,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창의력이 생기고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이 향상된다. 권 대표는 “특히 자폐아 중에서는 재료가 낯설어 미술치료를 거부하기도 하는 아이가 있는데 요리치료는 재료가 친숙해서 그런 적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세 번째는 청각 자극이다. 음식을 써는 칼 소리, 빻는 소리, 물이 끓는 소리 등을 들으며 사물의 속성을 익힌다. 여기엔 음악치료가 적용된다. 권 대표는 “동요에 맞춰 음식을 썰게 하는 활동을 통해 리듬감을 기른다”고 말했다. 또 ‘난타’ 같이 요리 도구를 이용한 박자맞추기 활동도 할 수 있다. 조리 도구의 재질에 따라 소리가 달라 아이가 흥미를 가진다는 게 권 대표의 말이다.

마지막은 냄새 맡는 것과 맛보는 것이다. 후각을 자극하고 맛을 봄으로써 오감을 고르게 발달시킬 수 있다. 권 대표는 “자기가 만들고 가지고 논 것을 먹어본다는 점이 큰 유인 효과로 작용한다. 요리치료를 시작할 때 미리 완성된 요리를 보여줘, 학습을 끝까지 마칠 수 있도록 끌고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천연 색소를 넣은 밀가루 반죽으로 찍기 놀이를 할 수 있다.
지적장애아·자폐아의 언어·수학 감각 향상

오감을 발달시키는 기본 효과 외에도 심화치료를 적용해 볼 수 있다. 특히 자폐아나 정신지체(지적장애) 아이에게 활용도가 높다. 현재 정부에서는 정신지체 아이들이 요리치료를 받아볼 수 있게 수강비용을 지원(바우처 제도)해 주고 있다.

우선 언어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큰 글자가 적힌 레서피를 활용한다. 식재료·조리도구 이름과 사용방법, 활동 순서를 그림 자료와 문장으로 알려준 뒤 활동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기억하고 언어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한다. 권 대표는 “‘면을 끓인다’, ‘김밥을 썬다’, ‘김치를 볶는다’는 등의 단어를 주입하듯 외우게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익히게 하므로 지적장애 아이에게 효과가 좋다”고 말했다. 다른 감각을 함께 사용해 언어를 익히기 때문에 기억도 오래간다.

 
 
다양한 색깔의 음식재료는 뇌의 시각 영역을 자극한다.
 
숫자감각도 터득할 수 있다. 권 대표는 “무를 자르거나 치즈를 자를 때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그냥 채썰기를 하지 않는다. 절반을 잘라 2분의 1 개념을 알려준 다음 또 한번 반으로 나눠 4분의 1 개념을 익히게 한다. 또다시 뭉쳐 완전한 1의 개념을 알려준다. 이렇게 배운 아이는 고차원적인 수학을 접할 때도 이해도가 빠르다”고 말했다. 기초 수학개념을 익히기에도 좋다. 재료를 몇 개 넣었는지 세어보는 것에서부터 계량기 읽는 법과 환산법도 익힐 수 있다.

편식도 고칠 수 있다. 권 대표는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자기가 만져봤던 재료는 다 먹는다. 직접 요리까지 하면 안 먹어볼 수 없다. 아이들이 특정음식을 안 먹는 이유는 물성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라며 “직접 만져보고 익히면서 재료를 파악하면 먹게 돼 있다”고 말했다. 또 요리치료를 하면서 식재료가 몸에 들어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려주면 해당 재료에 대한 거부감이 훨씬 줄어든다.

노인에겐 양식 등 새로운 음식 요리가 효과

노인을 위한 요리치료도 있다.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윤대현 교수는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지능·의지·기억 등 정신적인 능력이 감퇴한다. 이 때 뇌를 새롭게 자극시켜야 하는데 요리가 좋은 치료 도구가 될 수 있다”며 “익숙하지 않은 음식을 만들고 레서피를 익힐 때 새로운 신경전달 통로를 만들어낼 수 있다. 손가락과 뇌의 협응을 통해 종이접기 등 작업치료 효과도 얻을 수도 있다는 게 윤 교수의 설명이다.

요리는 익숙한 것 대신 스파게티·햄버거·함박스테이크 등 새로운 음식이 좋다. 권 대표는 “어르신이 서양음식을 싫어할 것 같지만 사실 무척 좋아한다. 평소 먹고 싶었는데 아이에게 양보하거나 새삼스럽다고 생각해 먹고 싶은 마음을 감춰왔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역시 주무르고 다듬고 빻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고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다. 거기다 요리치료에 쓰이는 재료를 심장과 뇌에 좋은 견과류나 현미잡곡을 선별해 건강 효과까지 알려주면 금상첨화다. 윤 교수는 또 “노인은 외롭기 쉽다. 요리 강습에서 만든 것을 나눠 먹는 과정에서 정서적 안정을 느끼는 것도 큰 효과”고 말했다. 요리치료 또한 노인복지관 등에서 국가지원 프로그램으로 시행되고 있다.